날씨가 유난히 화창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는 소소한 점을 제외하면 어제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날입니다.
오늘도 츠카사는 평소처럼 등교했습니다.
그런데 교실로 들어서니 뭔가 이상한 게 보입니다.
원래 자리배정상 츠카사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는데, 난데없이 책상 하나가 생긴 게 아닌가요?
게다가 누군가 앉아 있습니다.
의아해진 츠카사는 자리로 다가갑니다.
이때 갑자기 여러 일이 동시에 벌어졌습니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위쪽 창문이 츠카사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반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고, 우당탕 소리가 들립니다.
그 순간, 누군가 츠카사를 잡아채 뒤로 확 끌어당겼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안 돼, 스오. 144번째는 안 돼.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유독 그 목소리만이 아주 명징하게 츠카사에게 들렸습니다.
정신을 차리자 바로 조금 전까지 츠카사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진 유리창이 완전히 박살 나 있었습니다.
놀란 반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츠카사는 자신을 잡아챈 누군가를 돌아봅니다.
명찰에는 [츠키나가 레오] 라고 적혀 있네요.
난생 처음 보는 얼굴. 그러나 그는 츠카사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짓습니다.
몹시도 부시도록......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츠카사는 아찔한 두통,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저림을 겪었습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만 싶어질 만큼 가슴을 할퀴고 가는 그리움.
찬란해서 아픈 순간입니다.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츠카사, 이성치 판정 0/1
스오우 츠카사: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치 감소 없습니다.
혼란스러운 와중 조례와 수업들이 차례차례 지나갑니다.
도통 누구인지 모르겠는 옆자리 학생은 아주 태연하게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누구도 레오의 존재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굉장히 의아하네요.
이제 쉬는 시간입니다. 레오에게 말이라도 걸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굴까요?
스오우 츠카사:(잠시 동안 입술을 달싹이다 겨우 입을 연다.) 저... 실례지만, 혹시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츠키나가 레오:(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너의 목소리에 시선을 옮겼다. 부서지는 햇빛처럼 가벼운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으응~? 뭐야 스오, 평소에는 나한테 그런 시덥잖은 장난 치지 말라고 하더니~. 그건 무슨 역할극이야, 응?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스오우 츠카사:(우리 사이, 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에 눈을 몇 번이나 깜박거린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여, 역할극 같은 게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당신을, 아니 츠키나가 씨를 처음 보는걸요.
츠키나가 레오:와하핫, 오늘의 스오는 좀 이상하네. 시험이 다가와서 스트레스라도 받는 거야? (살풋 웃으며 너를 바라보았고.) 그런 딱딱한 호칭 말고 평소대로 레오 씨라고 불러줘~, 우린 친구잖아!
스오우 츠카사:(당신이 웃을 때마다 왜인지 모르게 시선을 빼앗긴다. 미소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네, 레오 씨. 하지만, 그 스오라는 호칭은... 저는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그리고, 아까는 구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츠키나가 레오:응응, 스오우 츠카사~. 이젠 잊지 않는다고, 그 이름. (아까와 같은 무구한 미소. 하지만 묘하게 조금 더 깊어진 듯한 녹빛의 눈으로, 너를.) 그래도 스오는 스오야~, 스오라고 부르는 게 더 재밌는걸!
앗, 고맙긴 뭘.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당연하지~.
...아앗, 스오 잠시만.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별다른 소득 없이 대화가 끝나고, 레오는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웁니다.
차라리 본인보단 주변 친구들에게 질문을 해 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침 근처에 모여 잡담 중인 반 친구 A, B가 보입니다.
친구들에게 ‘레오가 누구냐’고 질문해 볼까요?
스오우 츠카사:갑자기 끼어들어서 죄송해요. 혹시 레오 씨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신가요?
친구 A:아, 츠카사 군이구나. 죄송하긴~ 좀 더 편하게 끼어들어와도 된다고. 근데 질문이 좀 이상하네, 레오는 레오잖아?
친구 B:그래, 츠카사. 너랑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군지를 우리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가볍게 웃었고.)
스오우 츠카사:네? 저랑 제일 친한 친구라뇨? (어리둥절하여 A, B를 바라본다.)
친구 A:친구끼리는 닮아간다더니. 너 오늘 레오 군이랑 닮은 소릴 하네~ 그래, 제일 친한 친구. 둘이 초등학교부터 같은 학교 나왔다며.
친구 B:맞아, 게다가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잖아!
스오우 츠카사:아니, 저는 오늘 레오 씨를 처음 보는데... (A, B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반론한다.)
친구 B:오늘따라 이상하다 츠카사 너?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너희 1학기에는 수학여행도 옆자리에 앉아서 갔잖아. (싱겁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친구 A:그래그래. 참, 그러고 보니 너희 지금 부활동도 같이 하지? 궁도부였나?
스오우 츠카사:제가 궁도부인 건 맞습니다만... (이쯤 되니 제가 정말로 레오 씨와 친한 친구였던 건 아닌가 싶어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생각나는 게 없어 초조하다.)
A, B 모두 츠카사가 굉장히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 의아한 반응을 보입니다. 당황스럽네요.
여러 가지 질문을 해 보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레오와 츠카사 두 사람이 대단히 절친한 친구였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츠카사는 의문 속에서 남은 수업을 듣습니다.
빠르게 하루가 지나고 어느덧 하교할 시간,
레오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츠카사에게 다가옵니다.
츠키나가 레오:스오, 집에 갈까?
그러면서 엷게 웃는 레오의 모습은, 좀 지나치리만큼 츠카사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절친한 사이라더니 등하교도 같이 하는 걸까요?
츠카사는 여전히 레오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데요…….
그런데도 어쩐지 그의 말을 들어 주고 싶다는 기분이 듭니다.
츠키나가 레오:뭐해, 스오~. 안 갈 거야? (생긋 웃으며 너를 향해 뒤돌아보고 서 있다.)
스오우 츠카사:...아뇨, 가요. (당신의 미소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학교를 나섰습니다.
아침부터 맑았던 날씨는 여전합니다.
하늘은 아주 푸르고, 공기 중에선 바삭바삭한 햇볕 냄새가 납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같은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저마다 기분 좋게 웃습니다.
이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쁜 사건 같은 건 도무지 벌어지기 어려운 일로만 느껴집니다.
곁에서 걷는 레오는 희미한 미소를 건 채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묘하게 감상적인 기분이네요.
레오에게 흰 교복 와이셔츠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츠키나가 레오:으~음. 좋은 날씨, 파란 하늘! 놀러가기 딱 좋은 날이네~.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스오우 츠카사:그렇네요. 어쩐지...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은 날이에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이 대답한다.)
츠키나가 레오:(네 말을 듣고 널 바라보다가 슬 웃었다.) 응응, 그러게. 스오한테 좋은 일이라면... 역시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일 같은 걸까나~.
간식 같은 거, 좋아하잖아?
스오우 츠카사:어떻게 아셨어요? (되물은 순간, 당신이 나와 오랜 친구였다는 다른 친구들의 말을 떠올린다.) 아, 아니... 맞아요. 좋아해요.
츠키나가 레오:흐흥, 그야 당연히 망상을 통해서~. 라는 건 농담이고, 당연히 알고 있지! 스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걸?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디저트는 좋아해도, 벌레는 싫어하고 말이야.
스오우 츠카사:가, 갑자기 왜 벌레 얘기를 꺼내시는 건가요? 설마 벌레가 나왔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벌레라는 단어에 당황하여 두 팔로 몸을 감싸다, 이내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는 자각이 들어 슬며시 정자세로 돌아온다.)
...방금은 못 본 걸로 해주세요.
츠키나가 레오:와하하핫, 역시 스오라니까~. 여름만 되면 여기저기서 벌레가 기어나와서 싫다고 하더니... 어? (그저 귀엽게만 느껴지는 네 행동에 소리내어 웃다가, 일순 너의 등 쪽을 보고 눈을 댕그랗게 떴다.) ...스, 스오. 너 지금 등에 붙은 거...
스오우 츠카사:(마찬가지로 눈이 크게 떠졌지만 바로 질끈 감아버린다.) 사,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허우적거리던 팔이 당신의 옷자락에 닿자 그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츠키나가 레오:우옷, (저를 붙잡고 까라지는 너의 팔을 마주잡아 너를 가볍게 일으켰다. 참을 수 없다는 듯,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스오~, 괜찮아? 정신 차리라고? 사실 농담이었답니다, 벌레 같은 건 없어!
스오우 츠카사:(숫제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정말이죠? 그것도 거짓말이신 건 아니죠?
츠키나가 레오:(자꾸 새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는다. 그새 너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져, 부드러운 손길로 네 등을 달래듯 토닥였고.) 아하핫, 정말이야 정말! 진짜 아무것도 없으니 안심해. 미안미안. 많이 놀랐어, 스오?
스오우 츠카사:네에... 너무하세요, 레오 씨. 제가 벌레를 싫어하는 걸 아신다고 하셨으면서! (불현듯 저는 당신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오 씨. 괜찮으시다면, 당신에 대해 알려주실 수는 없나요?
츠키나가 레오:알고 있지만, 스오가 너무 귀여워서 조금만 장난쳐 볼까~ 했지. 스오는 대부분 장난에 속는 타입이니까. (일순 한없이 다정해진 눈빛이 올곧게 너에게 다가갔다. 심통난 네 표정을 가만히 보다가, 너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응? 나에 대해 알고 싶어~? 이제까지 많이 알아온 거 아니었어? ...뭐, 그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 친구였다 해도, 나도 스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걸.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쓰다듬던 손을 내리고 짐짓 앞만을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같이 지내면서, 알아가면 되지. 그치?
...자, 그럼 어서 갈까. 이러다 집에도 못 가고 길에서 노을을 보겠어~. (가볍게 그렇게 말하고는 앞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스오우 츠카사:... (이제까지 많이 알아왔다 하더라도, 지금 제겐 당신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는걸요.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삼킨 채 당신의 뒤를 따라 걷는다.)
레오는 어떻게 당신에 대한 걸 다 알고 있는 걸까요?
정말 츠카사 자신이 잊었을 뿐 두 사람은 오래도록 함께해 온 절친한 친구일까요?
여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츠카사의 집 앞입니다.
레오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춥니다.
이곳이 츠카사의 집 근처라는 사실도 아는 모양입니다.
멈춰선 레오는 츠카사를 배웅하며 평범한 인사를 건네다, 불쑥 이런 말을 합니다.
츠키나가 레오: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떨린 것도 같았습니다.
가늘게 동요하는 양손이 꽉 맞잡혀 있었습니다.
웃으려 애쓰는 듯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자연스레 추측하게 됩니다.
사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다지 표정이 바뀐 것 같지도 않은데요.
츠카사 자신은 왜 처음 만난 것만 같은 레오의 변화에 이렇게 익숙한 거죠?
그 말을 들은 순간 츠카사는 레오를 처음 만난 순간처럼 아찔한 통증을 느낍니다.
참을 수 없어 눈을 감으니, 눈꺼풀 안에서 빛이 부풀어 터지는 듯한 잔상이 아프도록 거세게 동공을 핥습니다.
비틀거리면서, 츠카사는 자신의 기억에 없던 어떤 장면을 스치듯 떠올립니다.
이상한 사람, 신비한 사람... 항상 짓궂고 잘난 척 하는, 열받는 사람.
하지만, 우리가 모시는 왕. 당신을 좀 더, 좀 더 잘 알고 싶습니다.
깊이 이해하고, 그 상처까지 파악한 뒤에... 그 때 반드시 말씀드리죠.
여기는 당신이 숨을 거둘 곳이 아니라고, 당신이 살아갈 곳이라고.
함께 살아갑시다.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전장으로 나아갑시다.
기다리다 지쳐 당신이 멀어져 버리기 전에, 저도 열심히 쫓아가서... 제 목소리가 닿을 수 있을 때까지 당신께 가까이 가겠습니다.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가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이지러집니다.
츠카사, 이성치 판정.
스오우 츠카사: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치 감소 없음.
뒤늦게 정신을 차려 보니 츠카사는 이미 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분명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오늘은 내내 혼란스럽기만 한 하루입니다.
그날 밤, 츠카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형상이 어릿하고 시점조차 흐려 어떤 내용인지 쉽게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레오가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가, 때론 환희에 찼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비통한 전율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공기로 자은 실처럼 연약한 슬픔이 거기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츠카사는 몹시도 뒤숭숭한 상태로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재난에 매몰된 듯한 기분이 츠카사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츠카사, 정신력 판정.
스오우 츠카사: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츠카사는 희미한 기억 중 잔재 하나를 건져 올렸습니다.
아주 괴로워 보이는 레오가 지친 결의를 띠며 말합니다.
츠키나가 레오:다음이 마지막일 거야. 곧 그 해니까. 그때도 반드시 너를 찾아낼게, 이번보다 빨리…….
그러니 안심하고, …이제 쉬어.
...그리고 그런 날이 열흘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2주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츠카사는 이상한 꿈에 시달리면서도 의도치 않게 계속해서 레오와 붙어 다녔습니다.
당연하게 두 사람을 절친이라고 여기는 주변 친구들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렸을 수도 있고,
자신이 이상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티내기 싫었을지도 모르고,
어쩐지 내내 곁을 맴도는 레오를 츠카사가 거절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 다니는 내내 츠카사가 레오에게 기묘한 끌림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쉽게 마음을 여는 사람이었나 생각해 보아도 감은 잘 오지 않습니다.
정말 어떤 사고라도 겪는 바람에, 본래 가까운 사이였던 레오를 츠카사가 잊어버리기라도 한 걸까요?
그야, 그렇지 않고서야…….
-
이윽고 찾아온 주말 아침, 츠카사에게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띠링!) [스오~, 오늘 함께 놀러 가지 않을래?]
스오우 츠카사:[네, 좋아요. 어디로요?]
츠키나가 레오:[앗, 으음 글쎄~ 그것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와하핫!]
[번화가 지하철역 앞에서 만날까?]
스오우 츠카사:[레오 씨답네요...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해서 나갈게요.]
츠키나가 레오:[응응, 이따 봐♪]
레오는 츠카사의 제안을 따르기로 합니다.
그럼, 나갈 준비를 시작해 볼까요?
츠카사, 행운 판정.
스오우 츠카사:
행운
기준치:
55/27/11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츠카사는 순조롭게 준비를 해 나갑니다.
오늘따라 머리 정리도 잘 되고, 스타일이 아주 멋지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 약속 장소를 향했습니다.
약속 장소는 번화가 지하철역 앞.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자 레오는 미리 나와 있었는지 다가오는 츠카사에게 인사합니다.
츠키나가 레오:(주변을 슬 둘러보다, 너와 시선을 맞추곤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스오~. 여기야!
스오우 츠카사:앗, 와 계셨네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반가운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츠키나가 레오:으응, 아니~ 나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생긋 웃고서는 너를 묘할 정도로 빤히 바라보다가.) 스오, 오늘 엄청 예쁘네?
화가:어머, 왜 의문형이야~ (네 당황한 얼굴을 보고 귀엽다는 듯 웃었고.) 혹시 친구보다 더 깊은... 뭐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야? 응~?
츠키나가 레오:(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생긋 웃으며.) 스오~, 우리가 그렇고 그런 사이냐는데~?
스오우 츠카사:그렇고, 그런 사이... 가 뭔지 츠카사는 잘 모르겠는걸요. (대답을 회피하고, 당신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츠키나가 레오:와하핫, 스오는 순진하구나~? (네 반응을 보고 그렇게 놀리다, 짐짓 입꼬리를 작게 올려 미소짓는다.) 저희 친구예요~ 엄청 친한.
화가:헤에, 그래? 아줌마 이래뵈도 이 일 오래 해서 촉은 좋은 편인데. 아니야? 아깝네~. (장난기 섞은 어조로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너에게 종이를 내민다.) 자, 귀여운 도련님 거 다 됐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츠카사의 스케치가 먼저 완성되어 종이를 건네받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특징을 잡아 아주 잘 그린 그림이네요.
레오에게도 보여줍시다.
스오우 츠카사:marvelous...♪ 레오 씨, 이거 보세요. 정말 닮지 않았나요? (부끄러워했던 건 금방 잊고 환하게 웃으며 당신에게 그림을 보여준다.)
츠키나가 레오:오옷, 벌써 나왔네~. 어디어디? (네가 건네오는 그림을 받아들어 보았다.)
... ...
그림을 받아든 레오는 말을 잃고 뚫어져라 종이만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헉, 하고 숨을 삼킨 것 같기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스오우 츠카사:...레오 씨? 왜 그러세요?
츠카사가 의아하게 바라보거나, 왜 그러는지 말을 걸어도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종이를 쥔 채 들끓는 애수를 목 안으로 삼키며 가늘게 떨고 있을 뿐입니다.
급기야 초상화에 얼굴을 묻더니 한참이나 어깨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황급히 종이를 떨어트립니다.
울기라도 한 모양일까요…….
스오우 츠카사:(걱정스러운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며) 레오 씨... 괜찮으신 거예요?
츠키나가 레오:... ...스오.
츠카사가 다시 레오를 부르면, 레오는 그제야 퍼뜩 고개를 들어 츠카사를 마주 봅니다.
몹시 오랜 세월 동안 공들여 깎은 듯한 결의가 젖은 동공 안에서 불처럼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던 레오는 아주 힘들게 말을 꺼내 놓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아니야. 가자, 스오. 이거… 잘 간직해 줘.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찢기거나 그림이 상하지도 않게…….
스오우 츠카사: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하지만... 레오 씨,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데 이만 집에 돌아가 쉬시는 건...? (머뭇거리며 제안한다.)
츠키나가 레오:(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 이내 잔잔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으응, 아니야. 괜찮으니까, 조금 더 걷자. ...그게 나을 것 같아.
그 그림, 잘 챙기고.
스오우 츠카사:네... 괜찮으시다면 다행이에요. (들고 나왔던 가방 안에 그림을 조심스럽게 넣으며 자리를 정리한다.)
그 약속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듯이, 레오는 몇 번이고 확답을 듣고서도 안심하지 못해 츠카사가 아무리 다짐을 해도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이 그림의 무엇이 레오를 이렇게까지 흔든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일어나 장소를 옮겼습니다.
다시 걸음을 옮기던 그때,
레오가 갑자기 츠카사의 손목을 잡아챘습니다.
레오는 몇 발짝 뒷걸음질을 치며 츠카사를 잡아끄는가 싶더니 자리에 멈춰 섭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는 시선은 어딘가 단단히 고정되었고,
침착을 유지하려 애쓰는 표정 너머로 공포가 어려 있었습니다.
츠카사는 자연스럽게 레오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려 봅니다.
아니, 저게 뭐죠?
레오의 뒤쪽 방향, 한 블록 너머 거리 구석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화재라도 발생한 걸까요?
다시 츠카사를 향해 몸을 돌린 레오는 코너에 몰린 듯한 태도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는 동안 연기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어떤 형체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이글거리는 눈, 박동하는 푸른 피부를 가진 이계의 공포,
불쾌한 역관절, 미끈거리는 표면,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지나치게 선명한, 뒤틀려 굽은 등뼈…….
원시적인 공포가 전신을 훑고 말초를 통과해 흘러나갑니다.
기괴하게 번쩍이는 안광이 무엇인지, 누구의 것인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야 들리기 시작한 숨소리는 당신이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기능하는지, 되삼키고 뱉는 기척이 메스껍기 그지없습니다.
도저히 지구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생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외형입니다.
저 끔찍한 것을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걸까요?
연기는 계속해서 뭉치며 머리부터 몸통, 징그러운 꼬리까지 하나의 외형을 다듬습니다.
역겨울 정도로 괴롭습니다!
이성치 판정.
스오우 츠카사: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치 감소 없음.
츠카사는 비틀거립니다.
저 생물이 지금 레오를 또렷하게 겨냥하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레오가 츠카사의 양 뺨을 감싸 쥡니다.
충격에 빠진 츠카사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돌려놓더니,
어…….
레오가, 츠카사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흔히들 키스를 하면 귓가에 종이 울린다거나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들 하지만,
포옹은 그냥 포옹이고 입맞춤은 그저 입맞춤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바쁘게 흐르고 설령 두 사람에게 행인들의 눈길이 머무른다 한들 잠시일 뿐입니다.
그러나… 레오가 츠카사를 껴안은 채 입술을 맞물린 동안,
금방이라도 이곳으로 튀어오를 듯했던 저 역겨운 생물들은 주변을 마구 두리번거리다 도로 연기로 녹아 사라졌습니다.
어째서?
또렷한 시선이 마주칩니다.
분명 레오는 울지도 웃지도 않지만,
둥글게 솟은 뺨에 고였다 흘러 떨어지는 눈물 같은 회한을 츠카사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오우 츠카사:...레오 씨. 왜... 어째서...
츠키나가 레오:(찰나의 순간, 흐릿한 시선으로 입을 벌려 너의 숨을 들이마시고는, 서서히 너에게서 떨어진다.) ...미안, 스오. 놀랐지.
스오우 츠카사:(가쁜 숨을 가눈다. 설레지도, 떨리지도 않고 그저 혼란만 가득했던 입맞춤의 의미를 알 수가 없어 당신의 눈을 바라볼 뿐이다.) ...방금 그건, 그러니까... 왜...
츠키나가 레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쩐지 아득하기만 한 미소를 지으며 너를 바라보았다.)
레오는 물러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냐거나, 방금 뭐였냐고 아무리 캐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방금 전의 입맞춤이 어떤 의미였는지, 전혀 말하지 않으려 듭니다.
대체 그 짐승들은 무엇이었을까요?
레오 역시도 그 생물들을 목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것을 처음 본다는 기색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레오가 나타낸 반응은 미지의 무언가를 최초로 목격하고 놀란 이의 난색이 아니라,
이미 아는 공포를 다시 맞닥뜨린 사람의 공포였으니까요.
...
어느덧 점차 날이 어두워지며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함께 돌아가는 길 내내 레오는 어딘가 생각에 잠긴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츠카사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면서도,
신경 한쪽은 자꾸 다른 곳에 쏠려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머리가 복잡합니다.
지능 판정.
스오우 츠카사: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문득 학교 선생님 중, 오컬트나 외계생물 등에 관심이 있는 교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혹시 그 선생님이라면 오늘 목격한 기이한 현상이 무엇인지 조언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츠카사는 문득 자신의 휴대전화가 없어졌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스오우 츠카사:...! 휴대전화가... 어디서 떨어트린 거지? (짐을 다시 확인해 보며)
츠키나가 레오:...왜, 스오? 뭔가 없어졌어?
스오우 츠카사:휴대전화가 없어졌습니다. 없으면 불편할 텐데...
정신이 없는 와중 무심코 놓고 왔던 걸까요.
하루를 되짚어 보니 아무래도 서점에 놓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귀찮게 되었네요.
츠키나가 레오:에엑, 휴대폰이? 어디서 잃어버렸는데?
스오우 츠카사:아무래도 서점에 두고 온 것 같아요. 다시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음, 먼저 돌아가시겠어요?
츠키나가 레오:서점~?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곰곰히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너를 보았다.) 그치만, 이 시간쯤이면 서점도 문을 닫았을걸. 봐, 시간도 늦었고. (이미 해가 져 버린 하늘을 가리켰다.)
내일 다시 가지러 가야 될 것 같은데... 웬일로 그런 걸 잃어버린 거야, 스오~. (어쩔 수 없단 듯 웃어보였다.)
스오우 츠카사:(머쓱한 듯 얼굴을 살짝 긁는다.) 글쎄요, 책에 몰두하기라도 했었나 봐요. 그럼... 어쩔 수 없지만 내일 다시 가야겠네요.
츠키나가 레오:그러고 보니 아까 책을 열심히 읽는 것 같긴 하던데. 어쩔 수 없네~, ...아, 다 왔다. 스오네 집. (너의 집 앞에 다다르자, 그때처럼 익숙한 듯이 걸음을 멈추며 살풋 미소지었고.) 오늘 재밌었어, 스오. 내일 봐~.
스오우 츠카사: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림... 잘 가지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츠키나가 레오:(인사를 건네고 그대로 돌아서려다, 이어지는 너의 말에 짐짓 눈을 접으며 웃는다. 그 모습이 어딘가 고요하다.) ...응, 고마워.
어찌 됐든, 복잡한 일들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쉬는 게 좋겠습니다.
피곤한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
다음날 등교한 츠카사는 어제 떠올린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러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선 조금 바쁘신 모양이네요.
그래도 평소 친절하셨던 분이니 믿고 말을 걸어 볼까요?
스오우 츠카사:안녕하세요, 선생님. 잠시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만... 괜찮을까요?
선생님:응? 스오우 군이구나.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 그러니?
스오우 츠카사:...오컬트나 외계생물 쪽에 관한 질문인데,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선생님:(네 말에 퍽 놀란 기색을 했지만, 이내 아까와 같이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물론이지, 얘기해 보렴.
스오우 츠카사:저... 어제, 길을 걷다 검은 연기 비슷한 것이 생물의 형태로 변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그 생물이... 무척 끔찍했어요. 발톱이나 이빨도, 눈도, 꼬리도 그랬지만... 뒤틀린 것처럼 굽은 등뼈가.... 너무.... (문장을 다듬지 못하고 횡설수설 내뱉는다.)
선생님:(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을 차분한 표정으로 듣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랬구나, 괜찮으니까 진정하렴. 스오우 군. 네가 말하려는 게 대충 어떤 건지 알 것 같아.
그런 괴물의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보다시피 지금은 처리할 일이 많아서 길게 이야기하기 어렵구나.
대신, 네가 관심이 있다면 빌려줄 테니 이걸 읽어 보는 게 어떻겠니? (어딘가에서 오래 된 책 한 권을 꺼내, 너에게 내밀었다.) 아마 도움이 될 거야.
스오우 츠카사:(입술을 깨물며 내밀어진 책을 잠시 바라보다, 소중한 물건인양 품에 껴안는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오래되어 보이는 책의 겉표지에는, <괴물들과 그 일족들>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스오우 츠카사:(교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자마자 책을 펴본다.)
<괴물들과 그 일족들>
츠카사, 크툴루 신화 기능 +1, 오컬트 기능 +3
자료 조사 판정 가능합니다.
스오우 츠카사:
Library Use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츠카사는 책을 넘기던 중, 눈에 띄는 페이지를 발견합니다.
스오우 츠카사:...그러고 보니, 레오 씨, 구석을 계속해서 보셨었지. 그때, 갑자기... 입 맞추셨던 것도 그렇고. 설마...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설명을 읽고 또 읽는다.)
츠카사, 지능 판정.
스오우 츠카사: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츠카사는 이런 의문을 건져 올립니다.
‘어제 자신이 목격한 그것이 이 정체 모를 생물이라면, 그것들이 쫓는 레오는 혹시…….’
스오우 츠카사:...시간여행자?
-
그날은 레오와 츠카사가 따로 하교했습니다.
며칠 내내 같이 가자고 달라붙더니,
갑작스럽게 ‘오늘은 일정이 있다’며 먼저 훌쩍 사라져 버려 조금 의아했죠.
하지만 레오에게도 스케줄이란 게 있을 테니, 뭐 이상한 일은 아닐 겁니다.
한편 츠카사는 어제 휴대폰을 놓고 온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니 어제 으스스한 무언가를 목격했던 장소도 지나게 되었네요.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정말 헛것을 본 게 아닌 걸까요?
게다가, 그 직후에 레오와…………
...심란하니까 이 생각은 떨쳐 버립시다.
어, 그런데……
저기 앞에서 바쁘게 걷는 사람은 레오가 아닌가요?
스오우 츠카사:(말을 걸어도 될지, 아니면 모르는 척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츠키나가 레오:... ... (너보다 빨리, 제 쪽에서 너를 우연찮게 시야에 담아 버린다. 눈이 마주쳐 버리자, 너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에, 스오?
눈이 마주친 레오는 놀라는가 싶더니 츠카사에게 인사를 합니다.
츠카사를 쫓아온 건 아닌 듯하고, 정말 우연히 만난 기색이네요.
스오우 츠카사:아, 레오 씨... 우연이네요. 전 휴대전화를 찾으러 왔어요.
츠키나가 레오:...아아, 그래서 여기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이곤) 그러게, 신기한 우연이네. 나도 이 근처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왔거든~.
스오우 츠카사:그러셨군요. 볼일은 마치셨나요? (시선을 옮기다 어제 무언가를 목격했던 장소를 또 한 번 보게 되어, 가라앉은 기분으로 묻는다. 지나치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들리지 않길 바라지만...)
츠키나가 레오:으응, 아니. 이제부터 일을 보러 가는 중이었어. (기분이 안 좋은 건가. 어제의 일이 기억 속에서 잠시 맴돈다. 뭐, 갑자기 그런 짓을 했으니. 미움받아도 할 말은 없나.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아, 미안 스오. 시간이 다 되어가네. 나 먼저 가 볼게?
스오우 츠카사:...네, 내일 뵈어요. (서두르는 듯한 당신을 어쩐지 빤히 바라본다.)
두 사람은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그런데 각자 갈 길을 가는 줄로만 알았던 레오가 자꾸 츠카사를 따라오지 않겠어요?
스오우 츠카사:저, 레오 씨. 먼저 가본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츠키나가 레오:에? 응. 나도 이 방향으로 가야 해서 가고 있는 거라구...? (다소 당황한 듯 잠시 제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네게 시선을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스오, 휴대폰을 잃어버린 곳이 서점이었던가?
스오우 츠카사:네, 제 기억으로는 그래요. 그래서 지금 서점으로 가고 있는 건데... 레오 씨는 어디로 가실 예정이에요?
츠키나가 레오:...아, (눈을 두어 번 꿈뻑이다가) 내가 가려던 곳도 서점이거든. 설마 같은 곳으로 가는 중일 줄이야~. (멋쩍게 웃었고.)
스오우 츠카사:... (멋쩍게 웃는 모습에 뭐라 말을 덧붙이려다 입을 다물어버린다.) 어차피 같은 곳으로 가는 거라면, 뒤에 졸졸 따라오지 마시고 같이 가는 게 어때요?
츠키나가 레오:...아하핫, 응. 그럴까? (무언가의 말을 삼키는 듯한 너의 모습에, 그저 웃으며 짧게 대답하곤 네 옆에 붙어 걷기 시작한다.)
행선지가 겹친다는 것을 알면 레오는 조금 난처해하지만, 어쨌든 방향이 같으니 별수 없이 동행하게 됩니다.
레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좀 이상합니다.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고,
휴대폰에 뭔가 장치 같은 것을 끼워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액정을 뚫어져라 살펴봅니다.
뭘 하는 거냐고 물어도 얼버무리거나 웃어넘길 뿐 대답을 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대단히 중요한 일중이라는 태도라 차마 방해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우선 츠카사는 휴대폰이 더 중요하니 의문은 잠시 미뤄 두고,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좋겠군요.
잠시 후, 어제의 그 서점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데스크에 문의하면 휴대폰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스오우 츠카사:실례합니다. 어제, 이 서점에 휴대폰을 두고 갔던 것 같아서요. 혹시 분실물 중에 휴대폰이 있을까요?
안내데스크의 직원은 츠카사의 말을 듣고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츠카사의 휴대폰을 들고 돌아옵니다.
다행히 분실물로 들어와 있었다고 하네요.
직원이 건네주는 휴대폰을 받아 돌아서자,
용건에 집중하느라 둘러보지 않았던 서점 내부가 그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어제 방문했을 때와 대단히 달라진 건 없지만,
평소 작가 사인회나 토크 콘서트 따위를 열던 중앙 무대에 오늘은 공개 라디오 팟캐스트 코너가 설치된 모양입니다.
그런데 코너 옆에서 레오가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시계를 보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뭘 하는 걸까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젠 흡사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휴대폰을 보고, 시계를 보고,
츠키나가 레오:이제 4분......
같은 이상한 말도 중얼거립니다.
아무래도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데, 대체 뭘 저렇게 간절하게 기다리는 거죠?
한편 오픈형 라디오 부스에서는 진행자들이 서점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주제가 영 시덥지 않네요.
이 순간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 같은 것을 묻고 있습니다.
캠페인이라도 하는 건지…
딱히 흥미가 생기는 화두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때,
츠키나가 레오:......스오?
스오우 츠카사:...네?
뒤늦게 다시 츠카사를 발견한 레오가 말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보고,
두 사람이 서 있는 위치를 보고,
시계를 보고,
츠카사를 봅니다.
레오는 마치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타오르는 휴짓조각처럼 안색이 변합니다.
낯빛이 새하얘졌다가 시퍼레졌다가,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서서 바람을 맞는 사람인 양 숨을 크게 들이켰습니다.
대단히 큰 충격을 받은 듯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사랑에 빠진 듯도 하고,
어둡게 빛을 발하는 깨달음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이로서는 도저히 다 헤아리지 못할, 거대한 시간이 쌓여 만든 고독 같은 것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입술을 엽니다.
그리고 몹시도 사무치는 어조로 애원합니다.
츠키나가 레오:...스오,
정말 간절한 부탁이야.
지금 저기에 가서, '나를 만나러 와' 라고 말해 줘.
그리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라디오 팟캐스트 코너를 가리켰습니다.
인터뷰에 응하라는 건가요?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요?
하지만 레오는 절대 장난 같은 것을 치는 눈빛이 아닙니다.
츠키나가 레오:이제 2분밖에 안 남았어, 제발.......
다시 한 번 뜻모를 말로 절박하게 매달려 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부탁하는데, 우선 시키는 대로 하고 볼까요?
아니면 라디오 방송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니 이 뜬금없는 요청을 거절하고 돌아설까요?
스오우 츠카사:무슨, 무슨 말씀을...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지만 간절하게 애원하는 당신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부탁대로 팟캐스트 코너 쪽으로 걸어간다.)
저,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라디오 진행자:아아, 네~ 어서 오세요! (네 몫의 마이크를 하나 들려주며) 잘 오셨습니다. 이름이랑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라디오 진행자:열일곱살이면, 아직 학생이신 거네요? 네, 감사합니다. 스오우 군은 이 순간, 소중한 사람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자유롭게 발언하시면 됩니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지금이 그때인가 봅니다.
스오우 츠카사:저를... 만나러 와요.
저를 만나러 와요, 라고, 츠카사가 말합니다.
근처에 선 레오는 이 순간 어떤 어휘로도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저항하지 못할 재해에 휩쓸린 부표처럼 떨면서도,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소실점이 있다면 그것은 츠카사라는 양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희열이 뒤범벅된 어떤 감정에 새롭게 이름을 붙여야 할 때 그 명명에는 단숨에 츠카사의 이름을 가져와야 마땅하다는 듯이…….
그러나 그 까닭 모를 환희 너머로,
츠카사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습니다.
검게 뭉쳐 거꾸로 흐르는 듯한 연기가 책장과 바닥이 이루는 90도의 모서리 각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잊지 못할 바로 그 형체를 서서히 갖추기 시작합니다.
오로지 츠카사만을 바라보고 있던 레오는 아직 자신의 등 바로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이제 뚜렷하게 머리 형태를 만들어낸 그 생물이 레오를 잡아 삼킬 듯 노려봅니다!
그러고 보니 츠카사는, 아까 선생님께 이 끔찍한 생물에 대한 정보가 적힌 책을 받아서 읽었던 적이 있죠.
그 책에 적힌 바에 따르면,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에게 몸을 숨기기 위해서는 분명......
스오우 츠카사:자신의 숨에 타인의 숨을 섞는 것뿐, 이라고. (입술을 깨물며 레오를 응시한다.)
츠키나가 레오:... ...? (까마득한 표정으로, 오로지 너만을 바라보았다.)
스오우 츠카사:(달려간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아직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다리가 저절로 움직여 당신을 향해 달려간다. 아주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던 찰나가 지나 마침내 당신 앞에 다다랐을 때, 이유 모를 눈물이 터져나온다. 미지의 생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 어쩌면...)
(어쩌면...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일지도. 그래, 나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입술에 스스로의 입술을 겹쳤다.)
츠키나가 레오:... ...! (지금 자신은 이 자리에 발을 붙이고 서 있지만. 결코 지금 이곳이 아닌 더 머나먼, 혹은 까마득한 어딘가를 응시하는 얼굴로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원하는, 바라는 모든 것이 오롯이 너에게 담겨있다고 말하는 듯한 눈으로.
하지만 그랬기에, 그렇게나 강렬하게 시선을 너에게 뺏기고 있었기에. 돌연 입술을 겹쳐오는 너의 움직임에 놀란다. 가까워지는 너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어서, 눈가가 젖어 있어서, 다급하게 너의 숨결을 마셔버리고 만다.)
츠카사는 황급히 레오를 끌어당겨 입을 맞춥니다.
영원처럼 찰나가 흐르고,
너무 놀라 굳은 레오는 뒤늦게야 자신의 등 뒤에서 배어 나온 죽음 같은 연기를 발견합니다.
츠키나가 레오:...안 돼!
그 순간 레오가 츠카사를 거세게 밀쳤습니다.
그러나 이미 검은 연기는 도로 뭉그러져 사라진 후.
레오는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고 맙니다.
츠카사가 이유를 물어도 답하지 못하고 ‘안 돼’, ‘이럴 수는’ 등의 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문득 고개를 들어 공포 어린 눈으로 츠카사를 보았습니다.
시선이 얽히자, 츠카사가 별달리 진정시키지 않아도 레오는 서서히 떨림을 가라앉힙니다.
이윽고 두려움이 가신 자리에 새로 떠오른 감정은, 결의.
레오는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힘으로 바로 섰습니다.
그리고 츠카사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츠키나가 레오:그래, 시작부터 이렇게 될 거였나봐. …스오, 내게 잠깐만 시간을 내 줄래?
스오우 츠카사:...네, 얼마든지요.
레오는 츠카사를 어떤 빌딩 옥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어느덧 밤,
달조차 뜨지 않은 날 가로등과 헤드라이트 조명이 세상을 비춥니다.
도시 야경이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꼭대기 층입니다.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이 눈물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난간을 짚은 레오는 오랜 기간 쌓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츠키나가 레오:(수북한 기억의 더께에서, 아주 작은 보물 하나를 꺼내듯이. 소중하면서도 회한이 어린 그것을, 그 기억을 조심스레 입에 담는다.) 있지, 실은 나... 아주 먼 미래에서 왔어.
스오우 츠카사:... (당신이 시간여행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츠키나가 레오:...왠지 예상했었다는 표정이네? 내가 있던 곳은 기술도 무척 발전하고, 생명이 수백 수천 년 단위로 연장되어 있는 그런 미래야. 상상할 수 있겠어?
그렇지만 스오, 그런 시대에도 늘 부의 차이는 존재하고, 그것이 권력이 되어서 많은 것들을 결정지어.
나는 거기서 썩 좋지 않은 위치에 있었어.
가난하고,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고 넘기기에 바빠서 다른 잡다한 것들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았지.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박물관에 가게 되었다가 오랜 옛날에 그려졌다는 초상화 한 점을 보게 됐어.
스오우 츠카사:...초상화라면, 설마?
츠키나가 레오:(어렴풋이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보는 순간에, 뭐라고 할까. 처음으로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어.
종이는 오래 되어서 누렇게 빛바래 있고, 그림을 그린 재료는 그저 수수한 목탄 연필일 뿐이었는데...
내게는, 그 오래된 그림이 너무나도 따뜻해 보였거든.
사람이 이유 없이 설레기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그때 알았어.
한동안 그 그림에 정신을 빼앗겨서 잊지 못하고 지내다가, 며칠 후에 별 생각 없이 라디오를 틀었어.
신기하겠지만 그 시대에도 라디오는 명맥을 잇고 있거든.
츠키나가 레오:그런데 그 라디오가 갑자기 발신 불명의 전파 하나를 잡아냈어.
백색소음 같은 게 지지직거리고, 거기서 드문드문 들려온 건... 분명한 옛 언어였지.
'저를 만나러 와요', 라고 하는.
스오우 츠카사:.......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고 눈을 크게 뜬다.)
츠키나가 레오:(짐짓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문득 생각하게 된 거야... 그 라디오 전파와 내가 봤던 초상화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하고.
그때부터 수없이 계산을 해서 알아냈어.
초상화가 그려진 연도와 같은 해인 2052년에, 그 라디오 전파가 쏘아 올려졌다는 걸.
그걸 알아냈을 때쯤에는, 조금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 오랜 옛 시대에 마음을 뺏겨서 말이야.
우연히 신과 대담을 하게 됐고, 그래서 과거로 와서... 스오 너를 만났어.
(곤란한 듯 작게 웃었다.) 그런데 실수로 너무 오래 전의 과거로 가 버려서, 스오 네가 환생하는 걸 143번이나 지켜봤지 뭐야.
츠키나가 레오:방금 내가 만났다고 한 너는, 까마득한 옛 전생의 너.
나는 계속해서 너의 환생과 만났고, 그때마다 널 사랑했어.
뭐어. 친해지고 나서 헤어지고,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아픈 적도 많았지만...
너와 사랑하며 보냈던 날들은 모두 무척 따뜻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웠어.
그리고, 네 144번째 생에서 맞이한 2052년 올해. 바로 어제에서야 겨우 깨달았어.
내가 과거이자 미래에 보았던 초상화는, 거리에서 우리가 함께 받았던 너의 초상화였다는 걸.
츠키나가 레오:아까 그 라디오 메시지도 마찬가지였어.
스오 네가 말해주었던 '저를 만나러 와요' 라는 말은, 결국 네가 미래의 나에게 미리 보내주는 인사였던 거야…….
이 믿기지 않는 말을 듣습니다.
받으려 한 적도 없던 그의 숨과 미래가 본래 츠카사 자신의 것이었다는 말을,
츠카사가 레오를 창조한 신이나 다름없다는 찬사를…….
너무나 길고 이제는 기억조차 흐려졌을 머나먼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인데도 막힘이 없습니다.
장구한 역사를 설명하는데도 망설이지 않고 매끄러운 구조를 지닌 문장들.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레오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입니다.
츠키나가 레오:이런 설명을, 아주 예전에는 자주 했었지.
그런데 나는 언제부턴가 네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일을 그만두게 됐어. 네가 너무 슬퍼했거든…….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네.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스오우 츠카사:(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울고 있다. 자신의 수많은 생을 만나가며 당신은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는지, 얼마나 외롭고 또 얼마나 막막했을지. 그런 의문들이 회오리처럼 머릿속을 지배한다.) ...알 것 같아요. 전생들의 제가 그랬다던 것처럼, 지금의 저도... 무척이나 슬프거든요.
츠키나가 레오:(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눈물을 흘리는 너를 쓰게 웃으며 바라보다, 손을 네 뺨에 얹어 천천히 쓰담듯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분명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는데. 제 눈가도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정말, 그런 점은 하나도 변한 게 없네. 스오.
울지 마,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니야.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너를 바라보며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야, 덕분에 난 너를 만났는걸. 말했잖아, 내가 미래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나를 그 괴로웠던 삶에서 꺼내준 건, 바로 스오 너야.
스오우 츠카사:...제가,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믿을게요. (울지 않으려 애써 보지만 잇새로 자꾸 울음이 샌다.)
츠키나가 레오:그럼, 당연하지. (너의 뺨을 천천히 손으로 쓸었다.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는다. 세상의 모든 사랑을 모아서 응축하면 너라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을 하고.) 144번 너를 만나는 동안, 물론 끝이 안 좋았던 적도 있고, 아예 친해지지도 못하고 너와 헤어진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넌 늘 내 앞에 나타나 줬어. 안 좋게 끝난 횟수보다 훨씬 많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줬거든. 그러니까, (마침내 한숨과도 같은 눈물이 새어나와, 곤란하단 듯 미소지으며.) 내가 2052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눈을 감고 몇 초가 지났을까, 서서히 눈을 뜨며 너를 마주보았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너를 위해 움직일 거야. 스오.
스오우 츠카사:...저를 위해, 라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불안한 눈길로 당신을 응시한다.)
츠키나가 레오:...아까 봤던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은, 시간 여행자를 도우려 하는 동료마저도 추적해 와.
지난 여러 번의 생에서, 이미 스오 너는 날 여러 번 그 녀석들에게서 구하려 하다 큰 위험에 빠질 뻔했었고.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에게 너를 연관시키지 않으려 했지만, 아까 서점에서 했던 그 입맞춤 때문에... 이제 너도 그들에게 추적당할 수 있게 됐어.
스오우 츠카사:괜찮아요. 그럴지도 모른다는 각오 정도는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마세요... 네?
츠키나가 레오:(네 말에 뺨을 쓰담아주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네가 다치거나 죽으면… 나는 또 기다리면 돼, 스오. 괴롭고 지루해도 익숙하니까, 그리고 애초부터 내가 선택한 거니까…… 이번에도 견딜 수 있어.
하지만… 생각해 봤어. 나는 그렇지만, 너에겐 이번 삶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잖아.
한 번 위험에 처하면 그 다음은 없는 거잖아…….
그리고… 살아오는 내내 그런 생각이 멈추질 않았어, 어쩌면 네가…… 나와 얽혀서 불행해지는 건 아닐까, 하고…….
난간 근처에 선 레오는, 그것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괴로움을 어느 정도 덜어낸 듯이 후련한 얼굴로 츠카사를 돌아보았습니다.
츠키나가 레오:그 초상화, 꼭 잘 간직해 줘야 해. 그래야 먼 나중에 내가 또 너를 만나러 올 테니까. ……그게 싫다면, 뭐, 버린대도 어쩔 수 없고.
스오우 츠카사:...레오 씨. 지금 뭘 하시려는 거예요.
츠카사는 레오가 무엇인가 저지르려 한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옥상 멀리 구석에서 올라오기 시작한 검은 연기가 건너편 건물의 조명을 어릿어릿하게 지워 가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를 사랑하였고,
그러는 데에 어떤 이해도 필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 미래인을 보세요.
한 세기를 겨우 살아가는 인간은 아마 절대 단번에 공감하지 못할 세월의 더께가 흩어져 나립니다.
레오는 천천히 뒷걸음질쳐 연기 방향으로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스오우 츠카사:...레오 씨! 멈춰요!
츠카사가 아무리 말려도, 소리쳐 불러도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제 뺨 위로 흘렀던 눈물 자국을 닦아 지우고, 너를 바라본다.) 이 방법 뿐이잖아, 스오. 저들은 사냥감을 먹고 나면 만족해 사라져.
말했잖아, 네겐 한 번뿐인 삶이라고. 이미 여러 번 겪은 내게 휘둘리기엔 너무 불공평하지…….
스오우 츠카사:하지만,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면, 차라리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 멈추게 만들겠다고 생각해 당신이 걸어간 쪽으로 뜀박질한다.)